나는 평생 일본에는 가지 않겠다고 대학시절에 천명한 바가 있는데,
미국에 몇번 왕래하면서 싼 비행기표 가격에 무릎을 꿇고
약간 비겁하지만 경유하는 것은 괜찮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나와 궁합이 맞는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회사에서 보낸 첫 출장이
하필이면 도쿄인지라
어버버 하다보니 도쿄에 와 앉아있게 되었다.
일본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 어떤 합리적이고 다수가 이해가능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무너질 쓸대없는 자존심은 왜 세웠는지 창피할 지경이다.
역사적인 배경을 제일 큰 이유로 삼아, 일본이라는 땅과 민족을 싫어하고
그들의 요상한 어떤면의 문화를 매우 혐오하는 데에서 나온 고집이었던 것인데,
그렇다고 일본만화, 드라마, 디자인도 싸잡아 무시하느냐 하면
오히려 막 좋아하고 앉았으니
애초부터 모순이 가득한 감정이긴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 장소가 일본이었던 관계로,
평소 가보고싶었던 곳, 사고싶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이 금새 떠오르지 않기도 했고
준비할 시간도 그닥 없었던 터라 무작정 보라는것이나 보고 오자는 마음을 먹고
"태엽감는 새"(절대 오지않겠다 마음먹었던 일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작가의 소설을 읽는 경험은 나름 또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권과
재원언니가 권해준 지하철노선표 한장 달랑 들고 날아와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이 온 동료들이 관광에 지대한 관심이 있고, 한두번 와본 경험도 있어놔서
그저 부지런히 따라다니면 남들 보는 것은 다 보고 돌아가지 않겠나 생각중이다.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스카이라인(이었나..)이라는 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맙소사 흡연석으로 하겠냐는 권유를 하길래 덥석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역시 일본은 마지막 남은 흡연자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처음 마셔보는 공기와 담배연기를 함께 마시는 것은 일본에서의 첫 경험 치고는 꽤나 운치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창문이 열리지 않는 관계로 공기는 없고 몇 년 동안 찌들어있는 냄새와 옆사람이 피워대는 독한 담배냄새가 섞인 피씨방 화장실에나 가야 맡을 수 있는 냄새를 한시간동안 마시며
역시 인간은 간사하고 나는 더욱 간사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비흡연 칸에 타서 흡연 하고싶어하는 나의 악마같은 마음이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일본은
흙이 참 검고 붉다.
여기저기 보이는 밭의 흙색이 이곳이 다른 땅임을 느끼게 한다.
지붕 모양이 다르다.
저 지붕 안에는 방 하나는 반드시 들어가겠구나 싶은 어느정도 높이와 각을 가진 지붕이다.
비슷한듯 하면서 뭔가 다르다.
홍콩에서 느꼈던 아! 다르구나 와는 확연히 다른 어떤 느낌이다.
여기가 일본인가.. 싶다가 어느순간 아 우리나라가 아니구나! 하게되고
또 응 완전 똑같군 하다가 조금 눈을 돌리면 앗 이상하게 생겼다! 하는 것이다.
호텔이 있는 신주쿠는
분명 명동과 신주쿠 둘 중 하나는 하나를 밴치마킹 했다고 단언할 수 있게 만든다.
어느 골목은 정말이지 사람들만 싹 들어다 옮기면 그대로 명동인 듯 하다.
수 많은 펑 터지고 결이 안좋은 노란 머리를 가진 아이돌스타일의 남자애들과
수 많은 머리색이 노랗고 속눈썹이 1미터이며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듯 한 여자애들을
우리나라 애들로 바꾸면 말이다.
노다메칸타빌레를 보면서 노다메같은 여자애가 일본에는 정말 있어서 저런 캐릭터가 나온 것일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충분히 있어도 되겠다 싶다.
과연 일본의 젊은이들은 내가 살아온 삶을 기준으로 한 리얼리티를 확실히 무너뜨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리얼한 보통사람들은 그런 것을 무심하게 받아들이나보다.
그리고 일본은
눅눅하다.
아직도 좀 걸어다니면 땀이 스물스물 나고
눅눅한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