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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0923

MJ/여행 / 2010. 10. 17. 21:15


암스테르담에서 로테르담에 오는 기차여행은 썩 즐겁지 않았다.
일단 전날 인터넷으로 예매한 표를 찾기위해 조작한 기계가 카드의 마그네틱을 읽지 못했고, 데스크 직원은 자신은 인터넷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게 왜 전산처리가 함께 되지 않는지 한국인인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고, 지구인인 나로써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표를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글쎄 밴&제리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인터넷이 되니까 거기 가서 프린트를 해보라는 것이 아닌가. 자기 앞에 컴퓨터와 티켓출력기가 있는데 말이다. 너는 못하냐고 했더니 자기는 죽어도 못한덴다. 예약기록을 확인하고 표를 출력해주는 것이 그렇게 네 일 내 일 따진 후에 며칠 전에 자라에서 잔뜩 쇼핑을 한 카드가 조금 손상되었을 지도 모르는 손님이 13유로를 날리게 할 일인가 말이다.
전혀 도와주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귀찮으니 썩 꺼지라는 식이기에 너네 보스 불러오라고 해서 직원교육 제대로 시키라고 하고 나발나발 따지고 싶은 마음을 암스테르담 진상녀로 네이버 메인에 뜰까봐, 그리고 영어로 따져야 하는 부담감이 너무나 커서, 결정적으로 누구한테 따져도 일이 해결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고이 접어놓고 다른 인포에 가서 물었더니 비슷한 반응이다. 쟤네가 못해준 일을 내가 어떻게 해주냐며 자기한테 뭘 원하느냐고 오히려 따진다. 그래서 프린트하는데나 알려달라고 했더니 그 말은 들을 생각도 없이 자꾸 뭘 원하느냔다. 아 프린트 하는데 어디냐고!!! 했더니 밴&제리로 가란다. 빌어먹을 밴&제리따위에서 프린트 하고싶지 않아서 다시 표를 끊었다. 그냥 밥 한끼 먹은 샘 치자 하고 기차타고 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표 검사하는 아저씨가 오더니 돈을 더 내란다. 왜 그렇냐고 했더니 이게 직행이라 더 비싼건데 여기저기 공지를 이미 했다는 둥 궁시렁이다. 그 사정은 정말이지 넌오브 마이 비지니스이므로 이제와서 돈을 더 내라니 기분이 썩 나쁘지만 어쩌겠는가 빨리 가는 기차라는데.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이랑은 정말 다른 도시다. 현대적이고 빠르고 무섭고 넓다. 중앙역에 도착하는 기차 창문으로 보이는 뷰 부터가 아 이 곳은 다른 유럽이구나 하고 느끼게 한다. 삼성역부터 역삼역까지와 광화문이랑 여의도를 모아놓고 코엑스몰을 지상으로 올린 후 타임스퀘어(영등포)와 정자동을 이어붙이면 그쯤 될까 싶다. 기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오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그 터프한 느낌이 몸에 부딪힌다. 담배연기, 흑인들, 껄렁껄렁한 젊은이들이 정신 없는 관광객과 뒤섞인데다가 공사중인 역 주변은 심히 혼란스럽다.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을 찾아 갔는데, 역과 필요 이상으로 떨어져 있어 막상 역 앞에 두리번거리고 있는 관광객들따위 자기네랑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텅 비어있다. 인포 여기 있으니 어서와서 물어봐요 가 아니라 굳이 와서 물어볼 작정이면 어디 한번 찾아와 보라는 듯. 호스텔 위치를 물었더니 너는 여기고 호스텔은 여기다. 걸어가던가 트램을 타라. 그러고 끝이다. 스페인에서였다면 유치원선생님처럼 트램 몇번 몇번 버스 몇번 몇번 타라고 알려줬을 것 같은데 여기 인포 아줌마들은 학생부선생마냥 전반적으로 영어를 아주 잘해서 알아듣기는 쉽지만 애로건트하달까. 모어가 없다. 딱 물어본 것 까지만 알려주고 무언가를 상의하려고 하면 나에게 뭘 원하냐는 식이다. 기차표 끊는 데 삽질을 좀 했던 관계로 돈을 안 쓰고 싶기도 했고, 트램을 뭘 타야 할지 물어보기도 귀찮고 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거리가 멀고 뭐 그런 것은 상관이 없는데 이 화장실에 인색한 나라에 아직 덜 적응한 관계로 화장실이 몹시 가고 싶어져서 호스텔에 오는 동안 이 도시의 주요 관광거리를 반은 훑고 지나왔음에도 이리 저리 살필 겨를도 없이 불안한 얼굴로 경보를 해서 걸어다녀야 했다.

어쨌던 기대하고 갔던 호스텔은 썩 마음에 들었다. 일단 건물이 신기하게 생겼으니 구경꺼리가 되었고, 호스텔 시설도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다른 호스텔보다 비싼 값을 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도 훌륭했고.

wii는 필요 없으니 wifi를 무료로 달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다행이 방광이 터지기 전에 호스텔에 도착은 했는데, 인터넷도 컴퓨터도 공짜란 없단다. 모든 것이 유료라고 자랑스러워 하는 호스텔 아저씨가 얄미워서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방으로 올라와 버렸다. 세비야의 데스크 언니는 지도를 꺼내어 도시 여기 저기 다니는 법부터 큰 슈퍼가 어디에 있는지 까지 알려줬었는데 이 아저씨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니미 뽕이다.

대충 자리를 정한 후 짐을 놓아두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 본다. 아침에만 해도 흐려있던 날씨가 약간 요상한 모양으로 개었는데, 구름은 무겁게 두껍지만 사이 사이로 햇살이 아주 강렬한 하늘이다. 16세기 풍경화에 나오는 바로 그 하늘 말이다. 중앙역에 가서 브리헤로 가는 표를 끊어놓으려고 마음을 먹고 아까 바람처럼 지나쳐왔던 길들을 한결 여유롭게 살펴보며 걷노라니 높은 건물에 끝없이 이어진 쇼핑센터에 젊은이들에 우리나라보다 더 빈번하게 보이는 듯 한 맥도널드가 낯익고 좋다. 역시 나는 도시형 인간인게다. 어디 가서 무슨 무슨 유명한 유적을 보고 전통적인 건물을 보고 하는 것도 신선하고 좋긴 한데, 며칠만에 이렇게 도시일 뿐인 도시를 보니 오히려 편안해지는 마음이니 말이다. 스타벅스를 찾고 싶은데 그게 아직 안보이는게 아쉬운 중이다.

사실 호스텔 출발하고 얼마 안있어서 현금이 너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긴 했는데, 카드가 있으니까.. 하고 무작정 덤볐던 것이 문제였다. 기차표를 끊으려고 했더니 마에스트로 카드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단다. 표 가격 알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런데 그 창구 직원은 시간은 물어보지도 않던데, 브리헤 가는 기차가 하루에 하나였을까? 어쩜 그렇게 설명이 하나도 없을까? 우리나라 차표 파는 직원들도 외국인들에게 그런 식이면 곤란한데 말이다. 영어도 잘 못할 테니 더 어렵게 대할 수도 있다. 안그래도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데. 알아 듣던 말던 한국말로 해버릴 것 같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 여행 서적에 “한국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니 숫자나 기본적인 회화는 반드시 알아가야 한다”라고 적혀있을 것 같다. 스페인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심지어 알파벳도 안쓰는 나라인데 관광하기 얼마나 힘들까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관광청에 일자리를 알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서울카드 그런 것 만들려면 관광코스 정말 많이 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중국 일본에 없는 독특한걸 두어개라도 만들어놓으면 끌어들일 수 있을텐데. 동대문이나 남대문 개발할 만 하다. 이미 꽤 알려져 있기도 하고. 스타마케팅은 서양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패스. 한국에서만 사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기차표 끊은 것을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왔던 길에서 조금 벗어나 보았다. 슈퍼마켓을 찾고싶기도 했고, 여기 저기 사진찍고 싶은 건물이 몇 개 있었기 때문에. 왠만한 길은 다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어서 으슥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관계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나중에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었을 때에도 저 높은 건물들만 기억해놓으면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그러했고.



주변이 너무나 큰 쇼핑거리라서 오히려 슈퍼 찾기가 힘들었다. 드러그스토어는 몇 개 있는데 슈퍼는 왜이리 안보이는지. 이면도로로 들어가서 조금 헤매다보니 사람들이 노란 가방을 하나씩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가방을 따라가면 왠지 무언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찾고 있던 슈퍼마켓 체인점 앞에서 가방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에게도 하나 주기에 선뜻 받아지지 않아서 망설이고 서있노라니 가방 주는 젊은이가 그냥 받아둬~ 라며 씩 웃는다. 안받을 수 없어 나도 씩 웃으며 받아들고 슈퍼에서 물을 하나 사 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샤워하는 소리인 줄 알았더니 밖에 비가 한차례 퍼 부었나보다.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적당히 돌아다니던가 그냥 있던가 표나 끊어놓던가 하고 아침식사를 기대해 봐야겠다.

로테르담에서의 첫 끼니로 태국일지 어디일지 정확치는 않은 기원을 가지고 있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을 택했다. 일단 가격이 저럼해서 매력이 있었고, 그 패키지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서 늘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던 바로 그 살짝 깊은 상자형 패키지였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곳은 식당에서 먹고 가는 사람에게도 그 일회용 패키지에 음식을 제공했다. 소고기와 닭고기가 섞인 적당한 소스의 세트를 골랐더니 베이스를 선택하란다. 밥, 볶음밥, 누들, 우동이 있기에 누들을 골라보았다. 탁월한 초이스였다. 암스테르담 3일동안 치즈와 빵과 느끼한 것에 지쳐있었던 둔해진 혀의 미뢰에 한줄기 날카로운 칼집을 내주는 오리엔탈의 향기. 그리고 젓가락. 옛날 같았으면 면이 뭐 이래 하고 불평했겠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초우면. 맛있기까지 하다. 아니 정말 맛있었다. 약간 컵라면 맛도 나면서 양도 많고 야채도 있어서 먹으면서 덩실덩실 할 뻔 했다. 어느새 몇번 안되는 여행을 하는 사이에 서양의 동양음식에 적응이 되었나보다. 인도에서 처음 외국의 면요리를 먹었을 때는 꽤 힘들었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그런 음식을 어디선가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익숙하다. 내일도 거기 갈 예정이다. 내일은 핫 패퍼 소스를 선택해봐야겠다.

그 집 말고도 베트남이 기원일 듯 한 이동식 판매대가 있었는데, 롤과 튀김만두 류를 아주 싸게 팔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하나씩 그걸 사들고 먹는데 나도 내일 사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큰 길가에 종종 보이는 스시 부폐, 샤브샤브 부폐, 수리남(난 수리남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과 중국식의 패스트푸드점(대충 보기에는 그냥 햄버거가게 같았는데 말이다), 터키음식점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인도음식점, 어딘가에 분명 중국집들도 대거 있을건데(중국안마가 있었으니까 분명) 한국 음식점이 있으리라고는 기대가 되지 않는다. 그 동양의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무엇이 잘나서 가는 곳 마다 외식업을 야금야금 점령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언젠가 샌프란시스코에 김밥천국을 차리고 싶었던 그 마음이 다시 밀려오는 중이다. 빠스나 떡볶이, 모듬전, 호떡, 붕어빵, 떡갈비 같은거 팔면 잘팔릴텐데…빙수도! 바르셀로나에서 빙수 팔면 대박 잘팔릴거다 아마. 가이드도 한국음식점을 추천을 안한다.

중국 사람들은 스페인에서 자녀를 많이 낳아 공무원으로 키운단다. 그들이 자리를 잡으면 중국인들이 그 나라에 잘 정착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바르셀로나에만도 중국인이 20만명인가? 넘는다던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몇백명 되지도 않는데 서로 싫어한단다. 서로 비교하고 내가 더 먼저 왔는데 걔가 더 잘산다더라 하면서 시기하고 내 자식만 돈 잘버는 사람 되면 된다는 식이고. 어차피 여기서는 높은사람 못된다며 여기서 편하게 키우고 외국어나 좀 하게 만들어서 한국 보내면 특차로 대학갈 수 있고 삼성 들어갈 수 있다며 결국 한국으로 돌려보낸다.

네덜란드 도시와 도시간의 평원과 양떼들은 참 예쁜데, 암스테르담은 너무 좁고 복작복작 내취향 아니고 로테르담은 넓고 깨끗하고 좋긴 한데 사람들 그닥 마음에 안든다. 내나라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겠지. 그래서 결국 네덜란드는 별로 정이 안간다. 기차표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고. 암스테르담을 내 마음대로 못보고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꾸역꾸역 관광꺼리를 만들어놓긴 했는데 그다지 인상적인 것도 없고. 그저 고흐와 렘브란트와 안네가 있어서 너네 참 부럽다 싶은 동네. 다 쓰러져가는 집 사이로 깨끗하지 않은 물이 흐르는 동네. 로테르담이 낫다 나는. 안네의 집 가보고 별로 기대도 안했지만 내심 코웃음이 쳐졌다. 저정도 집이면 저 때 우리나라 사람들 심히 감사하고 살았을 집이다. 대궐 같은 집이다. 침대에 세면대에 화장실에 식당에 없는게 없더구만. 잡혀가서 병걸려 죽긴 했지만 그런 사연 정도야 우리나라에 수천 수만은 될 것인데 사업가 아빠 잘 만나 좋은 상품이 되었고, 사업가 아빠 밑에서 잘 자라 좋은 글 쓸 수 있었구나 싶다.

어딘가를 볼 때 마다 아빠 잘 만나 별 것 안해도 그냥 잘 사는 남자처럼 유럽 너네는 조상 잘 만나 좋겠다 라는 생각이 항상 저변에 깔린다. 우리가 그런 조상이 이제라도 되면 좋을텐데 말이다.


주말이 되니 호스텔 앞쪽부터 쇼핑거리 초입까지 주욱 장터가 들어섰다. 꽃, 과일, 생선, 야채, 각종 물건들이 우수수 다 나와있다. 북적대던 쇼핑거리는 횡하고 장터에만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다. 생선류를 통째로 튀겨서 파는 집과 홍합을 삶아서 파는 집이 특히 인기가 많았다. 우리 떡볶이 먹듯 홍합 껍질을 수북히 쌓아가며 홍합을 먹고들 서 있었다.


얘네도 불친절한 오피서가 마음에 안드나보다.






표를 다시 끊으러 가서 어찌 어찌 사 보았는데, 로테르담에서 브리헤까지 가는 기찻길이 그리도 복잡다단할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적게는 네번, 보통 다섯번을 갈아타야 하는 코스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표의 정체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내 카드가 유럽땅에 자석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두번 확인하였으므로 인터넷 예약은 앞으로 절대 하지 않기로 한 바, 아저씨가 끊어준 그 복잡다단한 표와 시간표를 가지고 여차저차 잘 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기차가지고 삽질을 할 수는 없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니까.

호스텔로 돌아와 화장실을 간 후 다시 나가 시내 반대방향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해변… 이라기보다 뭐라고 해야할까 강변? 강인지 바다인지 사실 잘 모르겠는 어떤 물을 끼고 걷는 길인데 보기에 썩 괜찮은 다리가 두개 있었고 산책로도 잘 다듬어져 있었으며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들의 구성도 재미가 있었다. 계단형 지붕라인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건물들 사이로 한 두 개 우뚝 솟은 신식 건물이 나 로테르담이다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길로는 배도 지나가고 있었고, 조그만 부두에서는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는 중이었다. 바람만 신나게 불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평온하고 깨끗한 분위기였을 텐데 길가에 죽 늘어선 국기대의 만국기들이 미친년 머리처럼 휘날리고 카메라를 든 내 손이 날려 사진이 흔들렸으며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큰 구름이 매우 빠르게 움직일 정도로 상당한 바람이 쨍쨍한 햇빛과 함께 나를 공격했기 때문에 외투를 벗어야 이 난리가 끝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파릇파릇하고 폭신한 잔디가 잘 깔려있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 동네를 만났다. 심지어 그 잔디 위로는 작은 아주 오래된 형식의 트램이 다니고 있었고, 아주 크고 낮게 벌어져 있는데 뿌리째 들려있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들어올려주는 아빠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이미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놀고 있는 오빠로 구성된 가족을 볼 수 있었다.저런 아빠와 오빠가 있는 여자애는 참 좋겠다. 커서도 어딘가에 들어올려주는 아빠와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는 오빠가 있으면 살기가 참 덜 팍팍할텐데 말이다.

희한한건 이쪽 땅은 추워져도 촉촉해서 그런 건지 잔디가 아주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추웠다가는 입김이 나올 정도인데 잔디는 한여름이다. 그래서 날씨가 좀 회색이어도 잔디와 나무와 꽃과 차양과 파라솔들이 색깔을 만들어준다. 주로 녹색과 빨간색으로. 그리고 구름이 조금만 걷혀도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오래된 건물들도 제각기 색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체로 알록달록한 느낌이다. 그건 형형색색의 간판과 네온사인과 LED가 만드는 색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백 년 넘게 그 자리에 팍팍하게 꽉 차 있는 색감.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눈여겨 봐 두었던 베트남 군것질 트럭에서 튀김만두를 사먹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로 된 튀김 스틱을 사먹고 있었지만 나는 만두가 먹고싶었고, 용감하게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4유로. 스틱은 1~2유로면 먹는 것 같았는데 약간의 후회가 생겼지만 뭐 식당에서 먹는 식사에 비한다면야 양호한 가격이다. 한번 더 튀겨 나오는 것을 기다려 받아 한입 먹어보니 과연 예상했던 류의 흡족한 맛이다. 매콤한 소스를 뿌려 먹었더니 금상첨화다. 자꾸 먹다보니 나한테도 매운 맛인데 서양인들이 먹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 이 사람들 어떻게 이 양놈들이 이 매운걸 먹게 만든건가. 김치는 맵다고 난리치는 놈들한테. 하긴 튀김요리라는 것이 일단 고소하고 크리스피한 느낌이 있으니까 질겅질겅한 군내나는 매운 발효 야채보다 먹기 쉽긴 하다. 스틱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바로 이어서 먹자니 배가 부르고, 그 다음에는 거기 다시 갈 기회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 그 체인을 발견한다면 꼭 먹어보리라.

바람과 햇볕에게 모두 이기고 외투를 벗지 않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호스텔로 돌아와보니 내 옆자리에 새로운 룸메이트가 와 있다. 이 호스텔은 아시안끼리 모아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일단 그렇게 생겼으면 다 똑 같은 말 하고 서로 좋아하면서 잘 지낼 것이라고 마음대로 짐작하고 골라 골라 넣어주는 모양인데 반가워해야 할지 어쩔지 잘 판단이 안된다. 그리고 운이 좋은 것인지 없는 것인지 한국인 친구는 만나지 못했고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는데, 내 옆자리의 새로 온 언니는 일본인이었다. 딱 보니 그냥 일본인인 그런 일본인 여성.

일단 영어로 핼로우 한 후 주섬주섬 옷을 벗고 있는데 일본어로 일본인이냐고 물어본다. 니혼 어쩌고 하는걸 보면 대충 그 말이겠지 싶어서 아니 나는 한국인이야 했더니 미안해한다. 그러고 한참 있다가 괜스래 말이나 걸어볼까 싶어 혼자냐고 했더니 몹시 반갑게 혼자라며 대화의 장을 열 자세를 잡는다. 휴가차 로테르담과 브뤼셀로 여행온 나고야에 사는 게임잡지 에디터 유미. 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복장과 화장과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보트투어 하며 저녁시간을 즐기러 나가는 길에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자고있지 않으면 우리 더 얘기해~” 하고 나갔다. 어제의 그 네이티브같은 중국애들과 달리 나와 거의 비슷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가 반가워 마음이 좋아졌다.

피곤한 발을 주무르며 컴퓨터를 투닥거리다가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옛날에 받아놓은 발레슈즈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헤르미온느가 나오는 영화라기에 받아보았는데, 그녀가 혼자 주인공은 아니고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영화랄까. 여행중에 보기에 아주 적당한 잔잔하고 재미있고 흥미롭고 희망적인 내용의 영화였다. 그런데 제목이 왜 발레슈즈인지는 누군가에게 좀 묻고싶긴 하다. 스토리 오브 포슬 시스터즈 뭐 그런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깔끔한 영국영어를 써 주었기 때문에 그게 반갑기도 했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한 3주 듣고 살았더니 정말 영어가 어려워 죽겠는 중이니까. 영어를 잘 말하는 것과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기차스케쥴이 마음이 많이 쓰였는지 롤러코스터를 성공적으로 어렵게 타내고 마는 꿈과 그 비슷한 류의 도전에 관련한 꿈을 몇 개 꾸고 룸메이트들이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알람 맞춰놓은 시간보다 30분 일찍 잠에서 깼다. 나와 내 옆의 유미를 제외하고 모두가 중국인이었다. 세상에.. 네덜란드의 한 도시에 있는 호스텔에 여성 6명 도미토리에 극동아시아 3국, 중국인 4명과 한국인 1명 일본인 1명이 동시에 양치질과 세수와 샤워와 화장을 하는 진풍경이라니… 데스크 아저씨는 진정 이런 모습을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뭐 태국이나 베트남이나 필리핀이나 좀 멀게는 인도에서 한 두명 정도 와주었더라면 좀 더 다채로왔을텐데 아쉽다고 해야하나.

부지런한 중국인들이 모두 나가고, 유미가 같이 아침식사를 하자고 제의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하는 동안 내가 알고 있는 일본 문화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 이와이 슈운지, 마시모토 준, 오구리 어쩌구, 하나요리 당고, 노다메 칸타빌레, 토토로, 간사이우동, 도쿄의 지하철, 그리고 초등학교때 배운 몇마디 일본어 (당신의 전화번호는 몇번입니까 같은..)등등. 유미는 ‘감사합니다’와 일본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욘사마 포함 한국 배우 4대천왕, 겨울연가와 최지우, 불고기와 김치와 비빔밥, 요즘 즐기는 지지미와 뚝배기, 막걸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믿을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관광포인트, 많은 노인들과 리치한 아침식사, 그녀 입장에서 매우 싼 유로와 달러, 내 입장에서 매우 비싼 엔화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는 브뤼헤로 그녀는 풍차마을로 가기 위해 센트럴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전거가 매우 많아서 놀랍다고 하기에 도쿄에도 자전거가 많더라고 했더니 끄덕끄덕 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했더니 에에~~~ 하는 일본식 놀라움을 표현한다. 왜 그렇냐고 묻는데 어.. 그게 잘 안되는 회사를 운영하는 아빠를 둔 딸은 자전거를 배울 시간이 없어 라고 대답하기에 영어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그냥 난 좀 자전거가 무섭다고 해 두었다. 그리고는 일요일에 모두 문을 닫아버리는 유럽의 상점에 대해 놀라움을 공유했고, 유럽인들의 한달 넘는 휴가에 대해 부러움을 공유했고, 자라와 망고가 싼 스페인에서 쇼핑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공유했고, 잡지사에서 일하는 그녀와 디자이너인 나의 밤샘근무에 대한 불만을 완전 공감했고, 그에 따른 스킨케어에 있어서의 애로사항을 함께 슬퍼했다. 그러다 보니 금새 역에 다다라 어떤 여성에게 사진찍어주길 부탁해서 사진을 한방 찍고 서로의 여행이 즐겁기를 기원하며 기분좋게 헤어졌다.

좀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내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었을텐데 나는 나름 촉박한 스케쥴을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녀가 중국인이었다면 참 할 말이 없었겠다 싶었다. 내가 생각보다 일본 문화를 많이 누리고 있었구나, 일본을 그렇게 밀어내려 했는데도 중국보다 훨씬 가깝게 느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심각한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뭐 그래도 어쨌든 유미는 잠시나마 좋은 여행친구가 되어주었다. 게다가 내가 스물 몇살인줄 알았다며 매우 놀라워해주었으니 좋은 평을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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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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