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jiroom DS와 MJ의 블로그입니다. 주인장이 두명이므로 좀 헷갈릴 지도 모르겠으나 그냥 헷갈리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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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담 알러지

MJ/여행 / 2010. 9. 12. 06:01

민박집에서 사람들을 줄곧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혼자 여행을 잘 안하나보다. 민박집에 오는 손님 열이면 아홉은 여자혼자란다. 하긴 유럽에서 동양인 남자는 원숭이 다음이라 후커들도 꼬시지 않는다는데 한국 남자들이 그걸 참을 리가 없지. 한국 남자들을 몽땅 한번 내놔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학생들은 학교로 다 돌아갔으니 회사원 이상을 만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겠긴 한데, 문제는 그다지 재미는 없고 말은 많은 족속들이 많다는데 있다.
어린애들은 이래저래 뭘 떠벌이더라도 나름의 퓨어함과 유치함과 속이 빤히 보임이 있어서 짜증은 좀 나지만 귀엽게 봐줄 수 있는 구석이 있는데
나잇살이나 먹은 이 아가씨 아줌마들 그다지 반갑지 않다.
특히나 회사 잠깐 휴가내고 오신 언니님들은 쿨하고 괜찮은 경우가 많고, 회사원 동생들도 아주 괜찮은데 말이다, 회사 관두고 혹은 늙어서 장기여행 하는 사람들 아주 어렵다. 내가 그런 인간일까봐 아주 걱정되는 중이다. 그래서 되도록 쓸대없는 말을 안하려고 하고 있다.

일단, 요주의 인물들은 여행 경험이 아주 많은 축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밥먹으러 모이면 이런 저런 자랑이 아닌 척 하지만 자랑인 것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나는 하나도 안궁금한데 자기 얘기를 재미나게 하다가
내 얘기를 궁금해한다.
그러면 나는 그냥 그때 그때 내키는대로 실제를 말할 때도 있고 완전 뻥을 칠 때도 있다.
대충 얼버무려 말하면 아~~ 그런거야? 하면 아 네 그런거죠 해버리는 경우도 많고.
내 루트를 얘기해주면 백이면 백 왜 그렇게 가느냐고 타박을 하는데, 아니 뭐 여행 루트에 답이 있는건지 나는 몰랐네. 민박집에서 말하는용 루트를 하나 새로 짜야겠다는 생각도 하는 중이다.

그 후에는 인생상담을 해주고싶어 한다.
여행을 많이 해 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했으니 무언가 아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또 그 옆의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한다.
특히나 고생스러운 여행, 장기여행을 한 사람들은 해병대 갔다온 남자애들 같다.
거침없고 잘났고 내가 이게 무슨 주책이야... 하면서 칭찬받기를 원하고 조언해주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입이 절로 닫히고 표정이 절로 굳어버려서 그들이 듣고싶어 하는 칭송을 해줄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알러지 반응과 흡사하다. 건조한 아침에 콧물이 나는 것 처럼 짱아치처럼 탄 그들을 보면 광대뼈쪽 근육이 어느순간 수축한다. 그러면 내 장기를 발휘한다. 자기는 왜 프랑스 안가? 일정이 그렇게 넉넉한데? 그냥 가기싫어서요.(이게 끝이고 더이상의 반응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풍기는 표정 발사)

근 한달만에 한식을 먹는 거라며 젓가락을 가로로 눕혀 반찬을 집어가고 반찬이 많이 없다고 투덜대며 마음대로 목소리가 크고 민박집에 예외의 케이스로 부탁하는 것이 많으며 앞에서는 간만에 이런 한식도 먹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 너무 힘이 되었다며 떵떵거리다가 뒤에서는 민박집 위치가 어떻다는 둥 뭘 해줬으면 좋겠는데 귀찮아 하는 것 같다는 둥 한다. 50넘은 아줌마들이 왜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냥 아줌마도 그 넉살 난 잘 못참는데 여행 많이 한 아줌마 넉살 살인적이다. 학생 학생 하면서 언제 봤다고 막을 딱딱 놓는데 대충 씹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아니면 집에 들어와서도 화장을 지우지 말고 더 진하게 하고 있어 볼까보다. 엄마들은 화장 진한 여자 싫어하니까.

학교 선생님 하다가 관두고 세계여행을 몇개월째 다니고 있다는 50대 여성을 보았다. 난 물어보지 않았는데 어느 새 그간 어디어디를 다녔는지 다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 전에도 방학때마다 한달씩 어디론가 여행을 다녔단다. 학교 선생 참 좋구나 싶은 생각밖에 안들었으면 내가 너무 반 사회적인건가. 그 여행 많이 다닌 학교 선생 출신의 여성은 스페인에 온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샹그리아가 무엇인지 타파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여행을 그렇게 세계 각국을 했다면서 플라멩고 무희들이 턴을 할 때 튀는 땀이 더럽다고 얼굴을 가리고 있고 냄새난다고 코를 막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마자 하는 소리는 이게 좀 비위생적이긴 하다 그치? 였다. 마스크 쓰고 집에 계시면 깨끗하고 참 좋을텐데...

내가 머물고 있는 방에 체크인을 하면서 같이 지내요~ 하고 들어온 여성은 어디어디 끝내고 왔습니다~ 하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식의 표정을 짓자(사실 무슨 말인지 알았는데 알러지 반응 때문에 ㅡ,.ㅡ) 산티아고 모르시냐고 했다. 젠장 내가 그걸 당연히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알고 있었던 것이 더 실망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 그 산티아고 고행길을 잘 걷고 오셨으니 자랑삼아 그것을 첫 인사로 건낸 것이다. 박카스배 국토대장정 하고 왔어요~ 하는 것 같이.

두바이에 산다는 부부는 여기 저기 많이도 돌아다닌 모양인데, 그 부인은 나를 보자마자 친한척을 하면서 붙더니 내 쪼리를 밟는 바람에(발이 떨어지는 순간 땅에 아직 붙어있는 부분을 누군가 밟았을 때 발 등이 쪼리의 끈을 매우 세개 당긴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끈이 떨어지고 말았다. 어머 내가 그런거 아니죠~ 라는 말이 어떻게 먼저 나올 수 있는건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그랬어요? 가 먼저 아닌가? 길이 가까우면 내 신발을 벗어주겠는데 멀어서 안되겠네? 라니 그것은 어디서 나온 논리이며. 괜찮아요? 안괜찮은데요? 응.. 하나 사신어야겠네~ 하고 휙 가버렸다. 아줌마들이 다 그렇게 뻔뻔한건가 아니면 외국에 사는 아줌마들이 뻔뻔한건가 아니면 외국에 살면서 여행을 많이 한 아줌마들이 뻔뻔한건가 아니면 그 여자만 그런 것인가. 여행중에 신발은 아주 중요한 품목인데 나는 이제 원피스에 컨버스 신게 생겼다. 아무거나 샀다가 발이 아프면 그것도 골치이기 때문에 덥석 새 신발을 못사겠다.

나는 사람이 여행을 많이 하고 오래 하면 그만큼 성숙한 인간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될 뿐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어디서 뭘 봤는데 이건 그것만 못하다는둥 하려면 보지 말지 기어이 보러 와서는 투덜덴 후에 나중에 또 어디도 봤다고 자랑을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넉살과 뻔뻔함의 포스는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한 바가 있다.

짱아치처럼 태워가면서 사서 고생하는 여행은 돈을 받으면서 하는게 아니라면 하지 않겠다. 그 고생 말고도 할 고생이 많다. 그냥 그게 무엇인지 정도만 알면 된다. 사람들은 그 고생을 겪으면서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는게 분명한데, 그것은 진정 필요한 것을 성취하지 못할 것 같아 엄한데 돈을 들여 몸을 움직여 시간을 소비해서 쉽게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방식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갈수록 느끼는 것은 어떤 나라가 궁금해서 제대로 그 나라를 보고 오려면 아낌없이 돈을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나라를 찍고 찍고 돌아다니며 눈도장만 찍는 여행도 안할테다.
누가 명확하게 무엇이 궁금한 것인지를 밝혀 제대로 물었을 때가 아니라면 왠만하면 여행 얘기를 떠벌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이가 더 아주 많이 더 들어도 아무에게나 말을 놓지 않을 것이며 모르는 사람에게 괜히 말을 거는 것도 안하고싶다.

굳이 여행이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내 주변에 나를 포함하여 제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말이 많은 사람들도 많으며(사실 대부분이다 까놓고 말해 그렇다. 동의 할 것이다)
무언가를 설파하고 가르치기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심지어 나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다행인 것은 아무나 붙잡고 인생 얘기를 주절주절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끼리만 잘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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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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