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동네슈퍼
우리동네가 큰길가에서 보기에는 별반 뭐 있나? 싶은 동네이지만
한껍질만 골목 속으로 들어가보면 아파트, 빌라, 다세대들이 은근 많고
그에 따른 생활필수상가들도 나름 괜찮게 형성된 주요 골목이 있다.
내가 07년 겨울에 이 동네에 이사올 때만 해도
그 골목에 큰 슈퍼 두개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는 '장보고'라는 슈퍼였고, 하나는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슈퍼에 가나.. 잠시 망설이다가 여기한번 저기한번 가보았는데
응 장보고가 낫군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장보고를 이용하게 되었다.
좀 더 분위기가 밝았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 옆의 슈퍼가 분위기가 어두웠던 것 같다.
아줌마의 왠지모를 몽환적인 느낌과 한단계 낮은 조도의 조명, 카드를 내면 별다른 설명 없이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카드안돼요'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 등이 우리집에서 2~3미터 정도 더 가까웠는데도 불구하고 2~3미터 더 걸어서 장보고로 가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그 앞을 지나다보니
그 장보고 옆집 아줌마가 동네 주민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게 문 닫아요 하고 있었고,
또 얼마 안되어 그 집이 막 내부공사를 하더니
짜잔~ '장보고'라는 간판을 내거는것이 아닌가.
원래의 장보고 자리는 장보고 농산물가게가 되고, 원래 장보고 옆집 슈퍼였던 자리는 깔끔한 새단장을 마친 장보고마트가 되었다.
기업 인수/합병이란 바로 이런것이구나 라고 현장감있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다.
싸이월드가 엠파스니 이투스니 합병할때도 이처럼 실감이 느껴지진 않았는데 말이다.
장보고마트 맞은편에는 오래된 비디오가게가 있었는데
어느사이 문을 닫았나.. 싶더니
불현듯 장보고마트의 쌀,휴지 등을 쌓아놓는 창고가 되었다.
그냥 비디오가게 자리가 나갈때까지 잠깐 빌려쓰는것인가? 했는데
이제는 뭐 선반도 다 가져다놓고 아주 거기서 물건을 골라도 될 지경이다.
그렇게 규모를 키운 장보고는 근처의 조그만 야채/과일가게들과 조그만 슈퍼들을 제치고 위치상의 좋은 조건과 규모의 상대적 우위를 마음껏 이용하여 승승장구하고있다.
게다가 그 집 아저씨는 늘 쾌활한 모습으로 두 점포를 왔다갔다 하며 과일홍보, 무거운 물건 배달 등을 솔선수범했고, 그 집 일하는 청년들은 참 싹싹하고 일도 잘하니까 이동네 사람들은 그냥 좀 장보고에 매료되어버리는 것 같다. 심지어 다른 동네에 사는 훈쓰조차도 장보고로 장을 보러 간다.
관악구 낙성대동의 작은 골목에 위치한 장보고는
1년만에 주변에 있는 두개의 가게자리를 야금야금 잡아먹으며 300%의 성장을 기록했다.
나는 그 1년동안 수없이 그 길을 왔다갔다 하고 자주 장보고를 이용하면서
포인트카드를 만들지 않았음을 후회하고(때마다 갈등에 빠지게 만드는 개인정보를 적는 행위에 대한 귀찮음 때문에)
그 윗 블럭에 몇달전에 새로 생긴 서울할인마트를 보며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군.. 하고 안타까워한다. 서울할인마트가 장보고에 비해 우리집에서 30미터는 가까울텐데 그래도 난 좀있다가 장보고에 갈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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