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선생
"토끼"는 참 귀여운 동물이다.
작고 보송보송하고 오물오물하고 잘못해서 밟아도 소리가 안나고 평소 말수도 적고 나대지도 않는다.
아니 그런데 내가 뭐 동물애호가냐 왜 자꾸 동물 얘기냐 라고 물으면
그다지 또 그런것은 아닌데
문득 떠오르는 것이 토끼이기도 하고, 동물 이야기는 좀 재미가 있긴 하다.
고3때 대학 떨어지고 방황하고있었을 무렵,
남부터미널 지하상가에 무슨일로 갔다가 동물가게에 들러 토끼를 한놈 데리고온적이 있다.
그 하얗고 눈이 빨간 집토끼가 아니고, 애완용으로 좀 작게 나온 그런 녀석이었는데
흰 바탕에 검은 점무늬가 여기저기 있었다.
코 부분에 나비모양으로 점무늬가 있어서 꼭 수염같기도 하고, 그것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점잖고 좀 무게가 있었던지라
토선생이라고 불러주었다.
엄마아빠한테 토끼를 한명 데리고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무슨짓을 한거냐며 화를 내셨지만
토선생과 대면한 후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아이구 아이구 하면서 귀여워해주셨더랬다.
동생이야 뭐 말할나위없이 좋아했고.
토끼가 물을 안먹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다들 들은 적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은 제대로 뻥이었고,
토선생은 중국식 완탕먹는 숟가락에 물을 떠주면 조그만 혀로 낼름낼름 잘도 먹어댔다.
쇼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노라면
발 옆에 조용히 와서 동그랗게 앉아서 같이 TV를 봤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으며
밤에는 내 침대에 뛰어오르기 연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달여 연습 후 내 침대에 뛰어오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토선생이 없어져서 온 집안을 다 뒤진 후
아.. 정녕 출타를 하신 것인가.. 하고 포기하고 있다가 발견한,
책장위에 용감하게 올라가서 진열된 물건들 사이에 물건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던
도저히 내려올 엄두는 안났는지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던
귀여운 토선생
외갓집에 제사하러 가던날
거실에 넣어놓으면 똥을 쌀 것이라는, 토끼는 털이 있으니까 괜찮다는 엄마의 주장으로
봄바람이 싸늘한 베란다에서 몇시간 있다가
엄마의 주장을 무참히 무시하고 우리곁을 떠나버렸다.
그때 엄마는 숟가락을 주셨다.
삽으로 쓰라고. ㅡ,.ㅡ
내가 유일하게 좀 그리워하는 동물인데 흑...
아무튼지간에
낙성대에 있는 싸고 맛있는 소고기집에서 거나하게 고기를 먹어준 후(미도식당이라는 곳인데 다음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그 남부순환로와 평행인 낙성대쪽의 뒷길로 쭉 걸어오려는 참이었는데
동물가게에 철창안에 들어있는 강아지들을 훈쓰가 보고 불쌍하다 어쩌구 하고 있던 중
앞에 나와있는 토끼를 발견해버린 것이다.
토선생과는 전혀 다른, 그저 하얗기만 한 토끼였지만
그래도 오물오물 하는 것이 여전히 너무 귀엽다.
나중에 한번 도전해볼까...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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