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
어릴 때, 아직 가족들과 집에서 살았을 때는 전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자취를 하게되면 혼자 살아도, 두 명 이상이 같이 살게되면 더욱 더
스스로 없어지거나 증식하는 물건들이 생긴다.
1. 양말
2. 라이터
3. 펜
양말은 그 태생적 문제로 말미암아 꼭 짝이 있어야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법인데, 또한 그 태생적 문제 때문에 절대 한켤래가 아닌 한짝만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한짝이 없어졌으니 돌아와 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남은 한짝이 알아서 없어져주면 차차리 속이 덜 아프겠건만, 절대 그런 전-결의 과정은 존재하지 않고 계속 기-승만 반복한다. 한 때 우리집에는 한짝만 남은 양말들을 모아 꽃다발을 만든 것이 있기도 했고, 한짝만 남은 양말 전용 서랍이 있기도 했다.
세탁기를 샅샅이 살피고 온 집안을 이잡듯 뒤져도 잃어버린 짝없는 영혼들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을 보면
어느 차원엔가 양말 한짝만 모여있는 공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한쪽 발만 모여사는 좀 추운 동네가 있거나.
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팬티같은 경우에는 절대 없어지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다.
라이터는 양말과는 달라서, 없어지기만 반복하는 것은 아닌데, 그 수의 증감을 넌지시 살펴보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등속도를 가지고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속도를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어느 순간 놀랄만큼 많아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도통 한개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어떤 때에는 적정량의 수가 있어주기는 하지만, 작동이 되는 것이 한개도 없다거나 해서 괴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결국 가스레인지를 이용해야하는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에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게된다.
라이터의 증감에는 그래도 양말만큼의 신비로움을 부여할 필요는 없고, 속도를 뺀 본질적인 증감만 놓고보면 타당한 이유도 있다.
밖에서 급히 사게되는 경우가 많고(싸고 꼭 필요하니까), 서비스로 나눠주는 곳도 많아서 집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들고 들어오게 되고,
딱히 내것이다 하는 느낌도 없어서 아무거나 들고 나가니까
또 어디선가 빌려주고 안가져오는 순환을 계속 하게되므로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도 있겠다.
펜은 어느정도의 총량은 항상 유지가 되는데, 그 종류가 나도모르게 바뀌어있는 물건이다.
별 생각없이 들고 쓰다가 어느순간 보면 '엇 이건 내가산게 아닌 것 같은데...'하게되는.
당연히 분명 딱 찍어 내가 사놓고 쓰려고 보면 도통 찾을 수 없는 경우가 그 반대급부이다.
지금만 해도 내 앞에 있는 연필꽂이에서 내가 쓰고싶은 필기구는 단 한개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하이테크 검은색 0.4와 0.3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