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여행

[세비야] 9월 7일-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13. 05:05


마드리드에서 세비야 가는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오전.
민박집에 계속 눌러앉아 있으면 청소도 못하고 그럴테니 눈치껏 자리를 피해줘야 한다.
솔광장 옆 골목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 이용하며 차이라떼 한잔 해주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스페인 기차를 렌페(renfe)라고 부르는데, 마드리드에서 세비야 가는 내가 탄 기차는 아베(Ave)라고 아마 꽤 괜찮은 기차인듯 하다.
2등석을 끊었는데 뭐 자리가 썩 좋았다.
민박집에서 만난 언니가 나와 기차스케쥴이 똑같길래 같이 이동했다. 이참에 세비야 관광도 함께 하고.
우리 앞칸에 보니 카페테리아가 있길래 마침 배도 고프고 해서 방문해보았다.


샌드위치와 콜라 세트를 사서 먹으면서 앞에 화면에서 보여주는 피터잭슨과 번개도둑 스페인어 더빙버전을 보았다.
이미 봤던 영화였으니까 내용도 알겠다 스페인어든 뭐든 재미있게 보았다.
피터잭슨이 마지막에 그리스 신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신들의 크기가 사람의 스무배 정도 되었던 것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아테네 였나.. 여신 하나가 CSI:NY의 스텔라였던 것도 크게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마드리드 첫 날 호텔에서 TV를 켰을 때 위기의 주부들 스페인어 더빙버전을 마주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처럼 더빙을 싫어라 하지 않나보다.
아우 근데 비행기 타고 오면서 섹스앤더시티2 한국어 더빙판을 봤는데
것 참 못들어주겠더라는 것이다.
기차나 버스나 비행기에서는 그냥 한번 봤던 괜찮은 영화를 한번 더 보는 것이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나는 한국어를 하는 싸만다가 나오는 섹스앤더시티2를 기억에 담고 있어야 한다.



세비야 역 도착.
나는 평소에 기차를 탈 일이 거의 없으니까, 기차역 하면 인도가 퍼뜩 떠오른다.
그 막막함과 지루한 기다림과 웃긴 안내방송과 차가운 바닦과 자리없음과 침대칸과 아침의 담배냄새와 화장실가고싶음 등등



기사양반 뒤에 앉은 큰 가방을 맨 북미에서 온 것이 분명한 커다란 여자가 나와 같은 호스텔에 가는 중이었다.
배낭을 매고 성큼성큼 걷는 그녀를 돌돌이 끌고 따라가느라 좀 힘들었지만
한방에 호스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예약을 잘못 해서 다음날 부터 묵을 수 있었고 남아있는 방이 없었기 때문에
프론트에서 소개해준 다른 호스텔에 가야 했다.
이름을 들어보니 그 호스텔도 아주 유명하고 분위기 좋다고 소문난 곳이었기 때문에
거기도 좋은데라고 가서 재미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속으로만 말해주었다.
내가 한국말로 말해줘봤자 하나도 못알아들을 테고, 별로 쓸모도 없는 사실을 말해주고자 고군분투 하고싶진 않으니까. 


가든백팩커스 호스텔. 8인실.
나와 어떤 서양여자 빼고 나머지 여섯명이 모조리 친구였다.
스무살쯤 됐을까? 스페인 처녀들인듯 보였는데
나는 놀다 들어와서 자려고 준비를 하는데
이들은 샤워를 싹 하더니 요리조리 예쁘게도 꾸미고 서로 봐주고 유행가도 불러가면서 쿵딱쿵딱 하다가 12시 넘어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한참 자고 있는데 4~5시쯤 들어온 것 같다.
아침에 다시 눈을 떠보니 싹 다 사라지고 나와 어떤 서양여자만 남겨져 있었다.




세비야 관광은 뭐 사실 좀 실패했다.
도착하고 짐놓고 나와보니 이미 입장 시간이 다 지나가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구경이나 좀 해보는 수 밖에 없었고
스페인광장은 대거 공사중이었다.
버스표를 미리 끊어놓으려고 터미널에 갔더니 말라가행 버스는 터미널이 바뀌었다고 안내만 해주고
6시가 되자마자 순식간에 모든 창구가 문을 닫았다.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로 쓰이는 도시인데, 오렌지향은 나지 않았다.
아 뭐 물론 내가 발렌시아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유명한 중국집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고, 자석도 샀으니까 호텔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네르하로 가면 된다.